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🔹 기본 정보
- 명칭: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 (扶餘 定林寺址 五層石塔)
- 국보 번호: 제9호
- 소재지: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정림사지
- 시대: 백제 시대 (7세기 중엽, 약 639년 추정)
- 재질: 석재(돌)



🔹 역사적 배경
정림사지 5층석탑은 **백제 사비시대(538~660)**의 중심지였던 부여에 위치해 있으며, 당시의 **정림사(定林寺)**라는 큰 절터에 세워진 석탑입니다. 정림사는 백제 불교문화의 중심지 중 하나로 추정되며, 이 석탑은 목탑(木塔)을 모방한 석탑입니다.
또한, 백제가 멸망한 뒤 신라가 당나라의 협력을 받아 백제를 정벌했을 때, 당나라 장군 소정방이 정림사터를 **군사사령부(행영)**로 사용했으며, 석탑의 한 면에는 그가 새긴 **당나라의 승전비문(大唐平百濟國碑銘)**이 남아 있습니다. 이로 인해 역사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유산입니다.
🔹 구조와 양식
정림사지 5층석탑은 석탑이지만 전체 구조가 목조 건축을 모방한 것이 특징입니다. 다음과 같은 구성 요소로 되어 있습니다.
▶ 기단부(基壇部)
- 단층기단 구조로, 하단의 기단석 위에 각 면마다 기둥 모양(주칸)을 새겨 넣었습니다.
- 안정감 있는 낮은 기단이 특징이며, 백제의 절제된 미를 보여줍니다.
▶ 탑신부(塔身部)
- 5층으로 이루어진 탑신부는 목조 건축의 층탑 구조를 석조로 정교하게 재현했습니다.
- 각 층은 점차 줄어들며 안정적인 비례미를 보여줍니다.
- **옥개석(지붕돌)**은 각 층마다 추녀선이 뚜렷하고 처마가 부드럽게 올라갑니다.
▶ 상륜부(相輪部)
- 현재는 상륜부(탑의 꼭대기 장식)가 소실되어 없음.
- 일부 복원 시도와 모형이 전시되어 있기도 함.
🔹 특징 및 의의
- 현존하는 가장 대표적인 백제 석탑
- 백제 석탑은 드물며, 이 석탑은 거의 유일하게 온전히 남은 사례로 평가받습니다.
- 목탑 형식의 완벽한 석조 모사
- 나무로 지어진 탑의 구조를 매우 정교하게 석재로 재현한 기술력의 상징입니다.
- 백제의 미학과 건축 기술의 집약체
- 단정하고 균형 잡힌 비례, 부드러운 선, 섬세한 조각 등으로 백제 미의 정수를 보여줍니다.
- 당나라 비문이 남아 있는 역사적 현장
- 백제 멸망 이후 당나라의 역사 기록이 새겨진 비문은 이 석탑이 단지 종교적 목적뿐 아니라 정치적, 군사적 역사 현장이었다는 점을 보여줍니다.
🔹 기타 흥미로운 점
- 모형 복원: 국립부여박물관 등에서는 이 석탑의 복원 모형을 전시하고 있어, 상륜부를 포함한 완전한 형태를 볼 수 있습니다.
- 유네스코 세계유산: 2015년, "백제역사유적지구"의 일부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습니다.
🔚 요약



항목내용
명칭 |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 |
위치 | 충남 부여 정림사지 |
시대 | 백제 7세기 중엽 |
형식 | 목탑 모양의 석탑 (5층) |
중요성 | 백제 석탑의 유일한 온전한 사례, 역사와 예술성 겸비 |
국보 번호 | 제9호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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